우리가 무언가를 생각하거나 몸을 움직일 때마다 뇌 속 혈류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이러한 혈류 변화는 뇌의 활동 상태를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신호로 고해상도 뇌 영상 기술과 신경과학 연구에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이 신호가 개별 세포 수준에서 어떻게 만들어지고 조절되는지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기초과학연구원(IBS, 원장 노도영)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 김성기 단장(성균관대 글로벌바이오메디컬공학과 석좌교수) 연구팀은 한국뇌연구원 정원범 선임연구원(前 IBS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 연구교수)과 공동으로 억제성 신경세포가 뇌 혈류를 조절하는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한다는 사실을 새롭게 밝혀냈다.
▲【왼쪽부터】 임근호 박사 (IBS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 Vo Tan Thanh 박사 (IBS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 김성기 단장 (IBS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 정원범 박사 (한국뇌연구원, 前 IBS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 연구교수), Jin Tong 학생 (IBS 뇌과학 이미징 연구단)
뇌의 신경 활동과 혈류 반응 간 상호작용은 우리의 생각, 감각, 운동 기능을 가능하게 하는 모든 뇌 기능의 핵심 기반이다. 현재 널리 쓰이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 기술(functional MRI, fMRI)도 이 같은 상호작용 원리에 기반하고 있다. 기존에는 흥분성 신경세포가 혈류를 조절한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뇌 전체 신경세포 중 약 15%를 차지하는 억제성 신경세포의 역할은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그중 약 30%를 구성하는 SST 신경세포의 기능은 더욱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었다.
연구팀은 뇌 속 억제성 신경세포 중 하나인 소마토스타틴(SST) 신경세포가 두 단계의 혈관 확장 메커니즘을 통해 뇌 혈류를 조절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먼저 산화질소 분비를 통해 혈관을 빠르게 확장시키고, 이어 성상세포(astrocyte)가 작동하면서 더 느리지만 지속적인 혈관 확장을 유도하는 구조다.
연구진은 마우스 모델을 활용해 SST 신경세포를 광자극 및 감각 자극했을 때 나타나는 신경, 혈류, 성상세포의 반응을 관찰했다. 이를 위해 광유전학, 화학유전학, 약리학적 접근, 전기생리학적 기록, 칼슘 이미징, 내인성 광학 이미징, 초고자장 fMRI 등 다양한 첨단 기법을 종합적으로 활용했다. 그 결과, SST 신경세포를 자극하면 산화질소가 빠르게 분비되어 혈관 확장이 유도되고, 이후 성상세포가 활성화되어 보다 느리지만 지속적인 혈관 확장을 촉진하는‘신경-교세포-혈관 연계경로’가 작동함을 규명했다.
최근 뇌 영상 분야에서는 대뇌 피질의 깊이별 기능 차이를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는 초고해상도 레이어 fMRI(layer fMRI) 기술이 주목받고 있다. 기존 영상 기법으로는 탐지하기 어려웠던 미세한 차이를 시각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혁신적인 도구로 평가되지만, 관측되는 신호가 어떤 세포나 혈관 작용에 기반하는지는 불분명해 해석에 한계가 있었다. 이번 실험에서는 SST 신경세포의 기능을 차단했을 때, layer fMRI 신호의 특이성(specificity)이 뚜렷하게 감소하는 현상이 관찰됐다. 이는 SST 신경세포-성상세포-혈관이 함께 작동하는 경로가 뇌혈관 반응의 공간적 정밀도를 형성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이로써 연구진은 SST 신경세포가 뇌 혈류 조절에 직접 관여하고, 성상세포를 매개로 한 지연성 혈관 확장이 layer fMRI 신호 특이성을 형성하는 주요 세포 기전이라는 점을 세계 최초로 제시했다. 이번 발견은 layer fMRI 신호의 생리학적 기반을 제공함으로써 고해상도 뇌 영상 기술의 해석력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나아가, 뇌질환 영상 분석과 조기 진단의 정밀도를 높이는 데에도 활용 가능성을 열었다.
연구를 이끈 김성기 단장은“이번 연구는 억제성 신경세포와 성상세포 간의 정교한 상호작용이 뇌 혈류 조절의 핵심 기전임을 입증한 성과”라며,“치매와 우울증 등 다양한 신경정신질환에서 SST 신경세포의 기능 이상이 혈류 반응에 미치는 영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기초자료가 될 뿐만 아니라, 인간 인지 기능 연구, 뇌 질환 진단 전략, 고정밀 뇌 영상 기술 개발에도 의미 있는 기여를 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학술지‘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IF 15.7)’에 7월 18일 온라인 게재됐다.
[그림] 소마토스타틴 신경세포가 매개하는 뇌혈관 반응의 공간 특이성
소마토스타틴 신경세포는 뇌 혈관 주변의 성상세포를 조절하여 뇌 특정 부위에 혈액량을 보다 적절하게 공급하고, 이로 인해 뇌혈관 반응의 공간적 정확성이 향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