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보건의료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보건복지부만 해도 현재의 의료계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 어떻게든 도와주려고 하는 것 같긴 한 데 문제는 돈줄을 쥐고 있는 타 부처에서 움직이려 하지 않으니 그들 역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앞으로 관련학회는 물론 대한병원협회나 의사협회를 포함한 의료계의 대정부 및 대국회 로비가 보다 폭넓게,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소아과가 직면한 문제점 해결을 위한 에이치+ 양지병원 임인석 명예 원장(소아청소년과)의 말이다. 임인석 명예원장은 오랫동안 중앙대학병원 소아청소년과에 몸담아 오면서 UCLA병원 소아신장 객원교수와 대한소아신장학회장, 대한의학회 부회장, 대한의사협회 대의원회 부의장 등을 역임하고, 지금은 보건복지부 수련 환경평가 위원 및 조사분과위원장을 맡아 국내 대학병원 전공의 수련환경 및 처우개선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오랫동안 중앙대학병원에서 소아과 교수로서 후배양성과 환자진료를 하시다가 지난 3월 ‘에이치+ 양지병원’으로 옮겨 오셨다는데 이 병원으로 오시게 된 어떤 계기가 있으셨는지요?
사실 여러 병원에서 저를 초빙을 해주셨지만 지리적인 여건과 함께 양지병원 이사장이신 김철수 박사님, 그리고 김상일 원장님과 그동안 쌓아 온 친분으로 인해 이 병원을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현재 그러한 나의 선택이 매우 잘 했다는 생각을 가지고 만족하며 근무하고 있습니다.
양지병원의 상황을 아시는 분은 다 그렇게 생각하시겠지만 일반종합병원으로서 상당한 규모의 의생명연구소를 운영하고 있고, 무엇보다도 성실하고 짜임새 있는 경영을 하고 있으며, 전반적으로 의료 인프라가 잘 되어 있더라고요.
다만 한 가지, 물론 소아과에 관한 것이긴 합니다만 시스템상에 다소의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이 병원에 와서 처음 한 일이 소아과 진료를 좀 더 잘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소아 진정 시스템’ 즉 소아환자를 대상으로 MRI라든지 동위원소 검사를 할 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이 소아환자를 진정시키는 것이지요.
세데이션(sedation)이라고 해서 특히 소아환자의 경우 검사에 앞서 우선적으로 진정을 시켜야 하는데 그것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검사를 원활하게 할 수 없거든요.
그리고 이 병원에 와서 한 일이 소아성장과 소아비만 환자를 본격적으로 진료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소아비만과 관련해선 제가 이전 대학병원에 몸담고 있을 때부터 관심이 많아 비만 센터를 설치 운영하는 한편 전국적으로 다니면서 강연도 하고, 외국에 나가 발표도 하곤 했었습니다. 그래서 양지병원에서도 비만환자를 많이 진료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소아비만환자에 대한 영양 및 운동상담을 비롯해 치료와 재활에 필요한 시스템을 갖추게 된 것이지요.
또 양지병원에선 자주 검진을 나가는데 문제는 검진을 하고는 그것으로 끝이더라고요. 그런점이 많이 아쉬웠습니다. 검진 소견에서 비만, 고혈압, 고지혈증, 신장질환 등 이상이 발견된 아이들이 적지 않은데 이들 환자들이 병원진료와 제대로 연결이 되지 않고 있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이에 대한 홍보와 함께 병원 내에 필요한 시스템을 셋팅 중에 있습니다.
대학병원에 몸담고 있다가 와서 보니 인프라는 되어 있는데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지 않았던 겁니다. 이 시스템을 만들어 작동하게 하는 것이 병원에 큰 도움이 되고, 또한 내게는 보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지요. 요즘 그런 재미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최근들어 병원들마다, 심지어 대학병원들까지도 소아환자가 줄어들고 있다고 해서 많이 힘들어 하던데 양지병원의 경우는 어떠한지요?
저희 병원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저 이외에 소아과 전문의가 두 사람 더 있는데 이들 모두 환자진료를 하느라 많이 바쁜 모습이더라고요. 제가 이 병원에 온 3개월 이전과 비교해 지금 내원하고 있는 소아환자가 오히려 더 많아진 것 같습니다. 무엇보다도 제가 이 병원에 와서 새로운 시스템을 구축하다보니 이 시스템을 필요로 하는 새로운 환자들이 오고 있는 같기도 합니다.
환자들 입장에서 보면 표현이 좀 이상합니다
만 양지병원을 찾는 소아환자들이 많다고 하니참 다행이네요. 사실 최근 들어, 특히 우리나라의 출산율이 세계 최저라고 할 만큼 적어 병원을 찾는 소아환자 역시 크게 줄어들고 있는 상황 아닙니까? 이런 점에서 원장님은 현재의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출산률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어 어린아이들이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의료기관을 찾는 소아환자들 역시 크게 줄어들고 있는데다 소아들의질병들의 대부분이 특별한 치료를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다시 말해 비급여 항목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는 이야깁니다. 그런데다 소아과 전문의 가운데 70%가 개원을 하고 있는데, 이들의 대부분이 경영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지요. 최근들어 문을 닫은 소아과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 이를 잘 입증해 주고 있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이다 보니 소아과 수련을 하려는 젊은 의사들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러다보니 대학병원을 포함한 수련기관들의 경우 전공의들이 없어 교수들이 당직을 설 수밖에 없어 자연적으로 업무 강도가 높아지고, 이로 인해 교수들이 현직에서 떠나가는 안타까운 상황이 빚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 이런 상황이 매우 심각한 수준에 와 있다고 보여 집니다.
그렇다면 앞으로의 소아과 미래는 어떠할 것이라고 보시는지요?
현재 소아과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에 관해선 정부 역시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저도 양지병원에 오기 전에 대학병원에 몸담고 있었습니다만 대학병원을 포함한 상급종합병원들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정부가 정책적 지원을 해주고 있기 때문에 여타 병원들에 비해 상황이 다소 좋지 않겠나 싶기도 합니다.
그런데 앞으로 이 나라 의료를 짊어지고 나아가야 할 젊은 의사들은, 물론 자신이 수련을 받아야 할 곳이 상급종합병원인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겠지만 정작 그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보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곳이 어딘가’하는 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저출산에 대한 대책과 함께 소아과에 대한 젊은 의사들의 관심을 돌릴 수 있는 수가 조정 등 획기적인 대책마련이 있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하는 상황인 것이지요.
제가 듣기로 현재 개원을 하고 있는 소아과 전문의 가운데 20%가 자신의 전문과목과는 많이 동떨어진 피부 미용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이외에도 고혈압이나 당뇨에 대한 교육을 받고 있는 소아과 전문의들도 있고 말입니다. 한마디로 소아과만 가지고는 적절한 수입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겠지요.
앞서 말씀드렸습니다만 소아과를 전공하겠다고 들어오는 젊은 의사들의 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어요, 그래서 대학병원들에서 조차 필요한 만큼의 소아과 전공의를 모집하지 못해 당직과 같은, 지금까지 전공의들이 담당해 왔던 업무를 일반 교수가 해야 하는 사태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로 인해 교수들까지 견디다 못해 현직에서 떠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된 것이고요.
물론 아직까지는 소아과 전문의 수가 적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이 소아과를 선택하는 젊은 의사들이 계속해서 줄어
들게 된다면 멀지 않은 장래에 정말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아직까지도 많은 분들이 기억하고 계실 것으로 봅니다만 몇년 전 모 대학병원 소아과에서 발생한 의료사고(?)로 인해 이 사건에 관련된 의사가 구속까지 되는 등 거의 1년 여에 걸쳐 많이 힘들었던 사건이 있었지요.
이 사건은 나중에 의사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는 것으로 밝혀지긴 했지만 그 때까지 소아과를 선택하고자 했던 많은 젊은 의사의 의욕을 크게 저하시키는 결과가 빚어지게 됐다고 봅니다. 낮은 의료수가와 함께 이같은 일련의 사건들이 소아과에 대한 인식을 크게 실추시켜 소아과의 미래를 점점 어둡게 하고 있는 것이지요.
얼마 전의 일입니다만 낙상으로 응급실을 찾은 환자를 그 병원 응급의학과 전공의가 치료가어렵다고 판단해 다른 큰 병원으로 보내는 과정에서 사건이 발생했었는데 이에 대해 당사자가 ‘책임지기 싫어서 환자를 다른 병원으로 보낸 것이 아니냐’는 질책과 함께 적지 않은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고 합니다. 사실은 응급실에 도착했을 당시만 해도 환자의 상태가 그다지 나쁘지 않았고, 자살 전력이 있는 등 정신과 치료를 병행해야 함에도 자신이 몸담고 있는 병원에는 정신과가 없어 큰 병원으로 보냈는데 그 과정에서 환자의 상태가 악화되어 사망을 하게 된 것이지요.
사실 외과 등 필수과목 계열의 대부분이 항시 사고의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데 돌발적으로 발생한 사고를 무조건 해당 의사에게 법적 책임을 지도록 한다면 어느 의사가 그런 어려운 일을 하려고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 나름대로 문헌을 뒤져 보았는데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환자가 잘못되었을 때 해당 의사를 기소한 사례가 엄청나게 많더라고요. 일본 대비 265%, 영국 대비 895%의 비율로 과실치사 기소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어떤 명의라도 모든 환자를 다 살릴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수술을 잘 했다고 해도 환자가 잘못될 수 있는 것이지요. 따라서 불가역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의료사고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정부가 책임을 져주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최근들어 의료분쟁특례법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이런 법률을 만들어 의사들이 안심하고 진료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기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어찌 되었든 의료의 위기, 특히 소아과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마련되지 않는다면 소아과의 미래는 없다는 것이 나를 비롯한 소아과에 몸담고 있는 모든 의사들의 공통된 생각일 것입니다.
원장님 말씀 중에 ‘특단의 조치’를 언급하셨는데 그 특단의 조치란, 어떤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요?
한마디로 의료수가를 말하는 것이지요. 잘 아시겠지만 우리나라의 연평균 물가상승률이 5% 대에 이르고 있는데도 매년 조정되는 의료보험수가는 2%가 채 되지 않거든요. 이런 수준의 수가인상률로는 의료의 질적 저하를 불러 올 수밖에 없고, 최근 들어 그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저희 소아과인 것이지요.
아마도 요즘 대학병원급의 응급실에서 조차 응급으로 내원하는 소아환자의 진료를 담당할 의사가 없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것입니다. 이대로 간다면 소아과의 어려운 상황은 앞으로 더욱 악화되어 갈 것입니다. 정부도 소아과를 비롯한 몇몇 임상과의 상황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잘 인지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소아과를 비롯한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임상과를 개선하겠다는 의지없이 그대로 방치하게 되면 멀지 않은 장래에 엄청나게 많은 비용과 노력을 필요로 하게 될 것입니다.
보험수가 전체를 개선할만한 여력이 되지 못한다면 당장 위기에 봉착한 몇몇 임상과들 만이라도 현상유지나마 할 수 있도록 수가의 차등조정과 같은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나마 종합병원이 되었든, 개원의원이 되었든 어느 만큼 운영이 되어야 젊은 의사들이 소아과에 대 한 관심을 갖게 되고, 그래야만이 소아과의 미래가 보장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앞서 우리나라 소아과의 경우 아직까지는 진료
인력이 부족하지는 않지만 현재의 상황이 지속
된다면 언제고 인력이 크게 부족하게 될 것이라
고 하셨는데 언제쯤 그런 현상이 빚어지게 될 것
으로 전망하시는지요.
제 생각으로는 10년 정도가 지나면 그런 현상
이 나타나지 않을까 전망을 합니다. 계속해서
소아과 전공의 응시율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 대
략 짐작이 가지 않겠습니까? 앞에서도 말씀드린 바와 같이 지금도 일부 대학병원에서 전공의가 부족해 대체인력으로 입원전담 전문의를 들이고 있는데 이들도 교대로 근무를 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한꺼번에 여러 명을 채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지요. 지금 정부가 어느 정도 그에 대한 지원을 해주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병원들에게 상당한 부담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관련학회에서는 어떤 움직임이 있는지요?
제 자신 소아과학회 회장도 했었고, 지금도 이사를 맡고 있어 얼마 전에 가진 모임에 참석했었는데 이 모임을 통해 학회에서 정부와 적극적으로 논의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속 시원한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은 아니고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해결의 주안점은 역시 예산인데 정부 역시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없는 모양이지요. 이런 상황이다 보니 현재의 상황이 매우 심각해 어떤 방법으로든 해결이 되어야 하는데 그 해결의 실마리가 잡히질 않고 있어 그저 답답한 마음뿐인 것이지요.
사실 보건의료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보건복지부만 해도 현재의 의료계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어 어떻게든 도와주려고는 하는 것 같긴 한 데 문제는 돈줄을 쥐고 있는 부처에서 움직이려 하지 않으니 그들 역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이겠지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앞으로 관련학회는 물론 대한병원협회나 의사협회 등 의료계의 대정부 및 대국회 로비가 보다 폭넓게, 보다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지금도 병원협회장이나 의사협회장이 의료계가 안고 있는 문제들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나름대로 열심히 뛰어다니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노력하고 있는 만큼의 성과는 끌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더군요.
비단 의료계에 국한된 문제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시대적 조류도 감안하지 않으면 안 되
는 상황 아니겠습니까? 다시 말하면 의료계라고 해서 소위 MZ세대, 그들에 대한 인식이 다를 바 없는 것이거든요. 요즘 젊은 의사들은 다른 또래의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자기중심의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힘들게 일하려 하지 않습니다. 또 미래에 대한 전망이나 보수가 자신들의 기대와 다르다고 판단이 되면 과감하게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으로부터 뛰쳐 나갑니다.
이러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그들이 기대하는 만큼의 보수를 지급하지도 못하고, 업무상 과실이 발생하면 먼저 법적 책임부터 물으려 하며, 심지어 환자의 부모들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면 그들에게 의사의 본분을 이야기하며 참으라고 한다고 해서 과연 그 말을 이해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젊은 의사라고 해도 우리 소아과가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정작 아픈 아이들을 돌보아 주고 치료해 줄 수 있는 기조가 무너져 우리나라의 의료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점을 결코 간과해선 안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관련 학회와 단체는 물론 관련 부처들 역시 우리나라 의료의 백년대계를 위해 현재 직면한 문제 해결을 위해 수가와 제도 그리고 법적인 문제에 대한 특단의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는데 국민과 정부 그리고 의료계가 인식을 함께 해 주시기를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정리·김성환 기자)